
ⓒSeotaiji Company
태지의 여덟번째 앨범,
8개의 Atomos를 찾아나선 여행은 이제 그 조각을 모두 이 앨범에 담아 우리에게 전해졌다.
사실은 CD 를 구입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기까진 꽤나 오래 걸렸다. (태지형 미안해) 신곡인 ‘Replica’ 와 ‘아침의 눈’ 에 집중하다 보니 그만…
특히 ‘아침의 눈’ 은 이 노래의 타이틀이라고 하기엔 하나도 특별해 보일 것이 없는데도 (‘Moai’ 를 처음 접할 때, ‘Human Dream’ 을 처음 들을 때, ‘Coma’ 를 처음 만났을 때의 신선함이 있진 않았음) 난 이 곡이 타이틀곡이라는 것이 그렇게 특별할 수 없었다. 서태지 앨범 처음으로 타이틀곡이 그를 오랜 시간동안 지켜준 팬들에게 향한 서정적인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고르다니! 듣고 듣고 듣고 또 들어도, 오랜 시간에 묻어나는, ”너에게’, 93년 라이브콘서트의 ‘우리들만의 추억’, ‘Take 6′ 에 이어지는 우리 매니아들을 향한 고백이 가슴 깊이 스며듭니다.
“가는 손목으로 그려낸 달콤한 향기 난 알아”
매니아 한 사람 한사람의 연약하면서도, 가는 손목으로 그려낸 태지를 향한 사랑, 그 하나하나가 참 미약함에도 태지가 모두 알아주었다는 고백에 울컥하는 매니아들 많을 껍니다. 저도 이 부분 가사가 너무너무 애절해서 ‘아침의 눈’ 을 자꾸 듣게 되네요.

ⓒSeotaiji Company
주위에서 가끔 묻는다. ‘서태지를 왜 좋아합니까’ 라고. 사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인연’ 이라고밖에 말 못하겠네요. 인연이기에 흐르는 물처럼, 자연의 흐름처럼 초원에 어둠이 지고 눈이 내려 하얗게 변해버리고, 그 눈이 녹아서 다시 비가 내리고 노란 꽃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 태지와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 태지와 우리가 함께 공유한 시간의 흐름과 깊이.
아침의 눈은 그렇게 ‘인연’ 을 말하는 곡입니다.
다른 신곡인 ‘Replica’ 는 지난번 전국투어 ‘뫼비우스’ 용산 전쟁기념관 공연에서 태지가 “우리가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게 복제하며, 주체성을 잃어간다” 라는 멘트와 함께 불러준 노래다. 가사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요.
“우린 서로를 그저 닮으려고 무리한 애를 쓰는 것일뿐 그 기억 속의 불편한 부분들의 섹터를 다그쳐 마비를 시키고”
저 가사처럼 우리 스스로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한 부분들을 스스로 외면하고 있진 않은지 한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같은 현실에서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침묵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태지는 노래로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요.
‘Replica’ 도 지난 싱글들을 통해 나왔던 곡에서 보여주었던 네이처 파운드의 느낌은 좀 약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도입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머나먼 저 우주 위로 종을 울리면 이 높은 산 위에서 서 있는 나를 누가 발견해줄까”
이 부분에서 뒤에 깔리는 키보드 음이 살짝 종 소리 같기도 하면서 우주 위로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화음이 가사와 절묘하게 매치되는게 좋더라고요. ^^;
리믹스곡으로 T’ik T’ak 과 Coma 두 곡이 새롭게 수록되었는데 Coma[Nature]는 다른 악기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내세워 ‘Coma’ 가 이런 곡으로도 거듭날 수 있다는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8집에서 음악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곡은 ‘Coma’ 입니다. 원곡도 리믹스도 이렇게 멋질 수가 없다는..
8집 곡을 이렇게 정식 앨범에 다 모아 놓고 들으니까 퍼즐이 다 맞는 느낌이 듭니다. 전체적인 곡 구성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에 흠칫흠칫 놀랄 때가 있습니다. 태지형의 ‘음악적인 스토리텔링’ 능력에 감탄했어요. 브릿지곡 하나 없이도 잘 맞춰진 단편소설 모음집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역시 그가 오랜 세월동안 고민한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같은 곡을 (태지에겐 같은 곡은 아닐껍니다. 정교한 리마스터링이나 재 녹음이 있었을 테니까) 정규 앨범에서 또 보여줌으로서 하나의 앨범을 세장으로 나눠팔았다는 비난은 면하기 쉽지 않겠지만… 팬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이를 감수하며 태지의 음악적 스토리텔링을 잘 감상했습니다. 덕분에 곡 하나하나에 잘 집중하고 잘 감상했다면 음반 세장 값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돈도 뭐 그리 아깝진 않겠지요.
그러한 의도에 동감할 수 없더라도 태지의 음악을 듣고 싶다면 정규앨범 하나만 사도 충분할 거라 생각됩니다.